우리가 살아가는 이 우주는 과연 유일한 존재일까? 오늘은 초끈이론이 설명하는 다중우주의 가능성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초끈이론은 이 물음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며, 다중우주라는 놀라운 상상을 이론적 틀 안에 포함시킨다.
초끈이론이 그리는 우주의 구조
초끈이론은 우주를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단위를 ‘점’이 아니라 ‘끈’으로 본다. 이 끈은 진동에 따라 서로 다른 입자들의 특성을 만들어내며, 다양한 힘과 물질을 설명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하지만 이 이론이 온전히 성립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경험하는 3차원 공간과 1차원의 시간 외에도 추가적인 차원이 필요하다. 그 수는 총 10차원 또는 11차원에 이른다. 그렇다면 나머지 보이지 않는 차원들은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초끈이론은 이 추가적인 차원들이 매우 작게 말려 있어 우리의 일상적인 감각이나 장비로는 관측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이 말려 있는 차원의 형태를 어떤 방식으로 말아 두느냐에 따라, 즉 수학적으로 어떤 ‘칼라비-야우 다양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물리법칙과 우주 상수가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이론적으로 가능한 모든 조합은 수천조 개 이상이 된다고 추정된다. 이들 각각이 하나의 우주로 실현될 가능성이 있으며, 그것이 바로 초끈이론이 암시하는 다중우주의 시작점이다.
즉, 하나의 우주를 설명하는 이론이 아니라, 가능한 모든 우주의 ‘풍경’을 제시하는 이론으로 확장된다. 이로써 초끈이론은 더 이상 유일한 진리를 지향하는 학문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우주들이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의 지도’를 그리는 작업이 된다.
다중우주, 수학이 그리는 과학적 상상
초끈이론이 말하는 다중우주는 단순한 공상과학의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수학적, 물리학적 원리에 기반한 이론적 귀결이다. 이론적으로, 인플레이션 초기의 우주에서는 양자 요동으로 인해 거대한 시공간이 다양한 방식으로 ‘결정’되며 서로 다른 법칙을 가진 우주가 생겨났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각각의 우주는 서로 다른 상수를 가지고, 서로 다른 물리법칙을 지니며, 우리의 우주와는 완전히 다른 현실을 구현할 수 있다.
특히 초끈이론은 이렇게 수많은 가능한 우주들의 조합을 ‘풍경’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물리학자들은 이를 ‘초끈 풍경’이라 부르며, 이 풍경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는 단지 확률적으로 가능한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라고 해석한다. 이 해석은 기존의 자연법칙에 대한 개념을 크게 바꾸어놓는다. 예전에는 모든 법칙이 유일무이하며, 우주는 그것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했지만, 초끈이론은 법칙 그 자체마저도 선택의 결과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은 물리학이 철학의 영역으로 발을 들이게 만든다. 만약 우리의 우주가 단지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라면, 우리는 왜 이 우주에 존재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단지 이 우주가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일까? 이런 사고방식은 인류 중심주의와도 연결되며, 인류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과학이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다중우주의 윤리적, 존재론적 질문
다중우주의 개념은 과학의 영역을 넘어서 철학, 윤리, 심지어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 방식까지도 바꾸어 놓는다. 만약 정말로 수많은 우주가 존재하고, 그 각각에 우리가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다른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또한 이 다중우주 개념은 ‘자유의지’나 ‘운명’이라는 오래된 논쟁에 새로운 시각을 던진다. 하나의 우주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이 다른 우주에서는 실현되었다면, 우리의 선택이 절대적인 것은 아닐 수 있다. 이는 인간 존재에 대한 겸허함을 요구하며, 동시에 현실 세계에 대한 통제의 환상을 깨뜨리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과학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다중우주는 우리가 사는 세계를 하나의 ‘절대적 실체’가 아닌 ‘무수한 가능성 중 하나’로 바꾸어놓는다. 우리는 이 수많은 우주 중, 우연히 생명이 탄생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동시에 우주의 무한성과 인간 존재의 유한성을 극적으로 대비시키는 깨달음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초끈이론이 제시하는 다중우주는 단순한 과학적 이론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누구이며, 왜 존재하며, 어떤 세계에 속해 있는지를 다시 묻는 거대한 질문을 품고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여전히, 현대 과학의 가장 깊은 곳에서 조용히 떨리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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